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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0 우남 이승만 박사 서거 제55주기 추모식 / 7월19일(일)

yunpd 2020. 7. 17. 17:4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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□ 국가보훈처(처장 박삼득)는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바지한 ‘우남 이승만 박사 서거 제55주기 추모식’이 오는 7월19일(일) 오전 11시, 이화장(서울 종로)에서 열린다고 밝혔다.


□ (사)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(회장 신철식)에서 주관하는 이날 추모식에는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,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, 기념사업회원 및 유족, 시민 등 7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.


□ 추모식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예년보다 규모를 축소한 가운데, 추모기도, 추모사, 전집발간 헌정, 특별찬송, 추모의 노래 등의 순으로 진행되고, 이후 서울현충원 묘역으로 이동하여 헌화 및 분향을 진행할 예정이다.


[우남 이승만 박사 주요 공적]

○ 우남 이승만 박사(1875.3.26.~1965.7.19.)는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하였다. 1896년 서울에서 서재필의 지도로 협성회(協成會)를 조직하여 《협셩회회보》라는 주간신문을 발간하고, 논설위원으로 러시아의 절영도조차에 대해 국민이 합심하여 국권보호에 나설 것을 촉구하여 조차요구를 철회시켰다.


○ 1898년《뎨국신문》창간에 참여하여 민중계몽에 힘쓰는 한편 독립협회 총대위원으로 선출되어 개혁운동에 가담했다. 1899년 1월 만민공동회 활동과 관련된 쿠데타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만 5년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. 이 때 그의 정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「독립정신」을 저술하여 한국민의 자주독립의식 고취, 한국의 정치변혁의 필요성, 개화와 외교의 중요성 등을 한국의 독립보전방책으로 내세웠다.


○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 간 박사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조지워싱턴 대학, 하버드 대학, 프린스턴 대학에서 각각 학사ㆍ석사ㆍ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10년 귀국하였다. 1912년 세계감리교대회에 한국 평신도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《태평양잡지》,《태평양주보》를 발간하며 독립의식을 고취했다.


○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,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,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.


○ 1941년 12월,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이던 박사는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웠다.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0월 귀국하여 “뭉치고 엉키라,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못 사나니 다 같이 하나로 뭉치자”고 역설하였다.


○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.


○ 정부에서는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.


"본 저작물은 국가보훈처에서 '2020년'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보도자료를 이용하였으며, 해당 저작물은 정책브리핑 사이트 www.korea.kr 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."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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